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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OOY z Culture

[Steve McCurry]스티브 맥커리 - 진실의 순간 Unguarded Moment



사진을 접한 사람 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꿈을 꾸는 "National Geographic"의 사진작가,
사진을 공부 하는 사람 이라면 누구나 소속 되고 싶어 하는 작가 그룹 " MAGNUM"

그리고,

저널리즘과 문학 분야의 노벨상과 같은 "퓰리처상"을 받은
(퓰리처 상은 미국 AP통신의 최상훈씨가 '노근리 학살사건'을 보도하여 받은바가 있으니..)

스티브 맥커리가 현대사진계에서 관심을 받는 이유는
아래의 단 한장의 사진!



매그넘의 두 창시자인 작가(지금은 돌아가신) '로버트 카파'의 진실된 보도성,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의 보도사진 안의 미학을 두루 겸비한 작가로 통! 하고 있으니,
뒤 두분의 사진을 단 두개로 배교해 본다면,

어느 인민전선파 병사의 죽음 Spanish Loyalist at the Instead of Death, 1936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위의 사진이 로버트 카파의 역작인 작품이고, 아래의 작품은 앙리카르티에 브레송의 보도사진 속의 미학을
옅볼수 있는 작품이라 생각한다. 카르트에 브레송은 보도에 대한 표준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역설하고
있다. 브레송의 사진의 특징은 보도 사진에도 미학을 가미하여 보도성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심미적으로
훌륭한 작품을 "찰나"라는 순간의 포착으로 담아 내는데 있다.

그에 반해, 로버트 카파의 사진은 지극히 사실적이고 일반적인 보도의 기준에 입각한
사실적인 사회상, 전쟁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고, 또 그것이 로버트 카파의 사진을 대변해 주는
가장 큰 특징이라 할수 있겠다.

위 두 작가의 사진은 다른듯 다르지 않은것도(여러 작품을 통해서) 같지만 미학적 관점에서 볼때
분명 다른 점이 존재 한다. 이 다른점이 한곳에서 만났다고 할수 있는 곳이 바로
스티브 맥커리의 사진이라 할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왜 나는 스티브 맥커리가 안 외워 지는걸까?)

일단 시기적으로 활동했던 시기가 카파와 브레송과는 차이가 있어서,
작품자체를 이해 하는데 있어서 스티브 맥커리의 사진은 색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사실 사진에서 흑백과 컬러 사진을 두고 함께 이해 한다는것 자체가 모순이 될지는 모르나,
(그렇다고 단순하게 흑백사진에 컬러를 넣는 작업이 미학을 가미하는 작업이라고는 할수 없다.)
화면구성과 인물을 보는 카메라의 시선을 보면 이해 할 수 있다.

스티브 맥커리의 사진을 잘펴 보면

01234


강한 색감과 초상화를 그리듯 인물에 중점을 둔 그의 작업의 결과물은
보는 이로 하여금 색으로 휘여 잡고, 내용까지 더해서 생동감 마저 들게 한다.
(사진을 어느정도 더 퍼와서 블로깅 해야 할지 몰라서..)많은 사진을 가져 오지는 못했지만,
오랜시간 동안 인도에 머물며, 아프카니스칸에 머물며 그들과 호흡하며 작업한 사진은 우리에게
말을 하고 있고 우리는 그 속삭임에 집중할수 있는 힘을 사진은 전해 준다.

스티브 맥커리에 대한 좋은 말드과 평은 쉽사리 구글링이나 다른 포털의 검색을 통해서
포스팅된 결과물을 접할수 있으니 작가에 대한 소개나 생각은 접어 두고


이번 전시회에 대한 평을 하자면,

항상 세종 문화회관 미술관이나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에서 사진전을 할때면
늘 드는 생각은 조명!!! 이다.

기본적으로  사진을 보호(아니지 사진을 보호 한다기 보다 프린팅을 보호 한다는 의미가 크지)한다는
명목으로 유리 액자를 한것은 이해를 할수 있겠으나,

조명의 각도를 작업물을 감상하는데 있어서 어려움을 느낄 만큼 조명의 조사각을 그렇게 해 놓아야 했는가
를 물어 보고 싶다. 누가 원해서 할로겐 조명의 조사각을 정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최악의 조명 조사각이었다. 차라리 할로겐을 버리고 형광등으로 했었더라면 오히려
사진을 이해 하는데 있어서 큰 도움이 되지 않았나 싶은 생각이든다.
(프린팅 수명도 더 늘어났겠지만..)

일단 미술품이나 사진작품을 감상하는데 있어서 미색 계열의 조명은 적어도 나에게는
작품을 관람하는데 큰 장애요인으로 다가 온다.
(그이 비하면 건희횽님의 리움의 조명을 좀 닮을 필요가 있다. 미술관 하나는 아주 개념적으루다
 잘 만드셨단 말이지..)

고급스러워 보이고, 있어보이는 조명 이어서 당연히 할로겐을 선택 했어야 했겠지만,
유리 액자를 해 놓고 그렇게 조사각을 만들려고 했거늘 둘중에 하나는 포기했어야 하는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아직도 머리속이 그득그득하다.

그리고 하나더 첨언 하자면,
입장관객수의 제한이다. 아마 시립미술관도, 예술의 전당 미술관도 시행하고 있으리라 생각이 되지만
어느정도 입장 제한 인원을 두고 늦더라도 쾌적한 관람을 위해 주최측은 애써줘야 하는것이 아닌가.
작품이 높이 걸려 있어서 많은 사람이 있더라도 어디에서 관람이 가능한 구조가 아니라면,
적어도 미술관 안에서 사람들 틈을 비집고 들어가 디지털 도슨스를 이용해 관람을 하게 만드는
배짱은 어디서 나오는지 물어 보고 싶다.

예전 예술의 전당 유섭카쉬전을 할 당시 1시간 여를 기다리고 입장 했으나,
관람 할때 만큼은 여유롭게 관람을 한 기억이 있다.(조명은 역시 열악했지만..)

사진 인구가 늘어 갈수록 요구 수준도 높아 가고, 관람문화도 개선되어 가고있지만
아직 전시 수준은 아쉽기만 하다.
(프린팅 퀄리티는 말하고 싶지도 않다...에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