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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OOY z Culture/Movie

[마루 밑 아리에티]생명이 살아 가는 최선의 삶의 엿보기



http://www.cine21.com/Movies/Mov_Movie/movie_detail.php?s=media&id=28759



원제 : The Borrowers 借りぐらしのアリエッティ

감독 : 요네바야시 히로마사

기획, 각본 : 미야자키 하야오



오랫만에 지브리 스튜디오에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아닌

낯선 이름의 감독이 한 편의 에니메이션을 내 놓는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나이가 70이 되어 지브리를 이어갈 감독이 필요하기도 하거니와, 

몇 번의 세대 교체 노력이 실패로 돌아감에 따라 위기를 느꼈던 것은, 

지브리 스튜디오 뿐만 아니라 관객도 늘 가슴에 품고 있었던 사실,


지브리 에니메이션을 좋아하는 나는,

벼랑위의 포뇨를 보면서 약간의 힘잃은 하야오 감독을 느꼈던 터라, 더욱 간절함이 있었다. 


포뇨로부터 2년이 지나고,

지브리는 히로마사 감독의 이름으로(물론 하야오 감독이 기획하고 각본을 쓰긴 했지만) 작품 하나를 내어 놓게 된다.

언제까지 하야오와 히사이시 조의 음악에 기대어 갈수만 없는 지브리 인지라 관객과 지브리는 가슴 벅차지 않았을까?


"마루 및 아리에티(Borrowers)"


영어 원제의 뜻은 '빌리는 사람' 10cm의 소인이 큰 인간(보통의 사람이지;;)의 물건을 빌려서 사는 삶을 그려낸다.


http://www.cine21.com/Movies/Mov_Movie/movie_detail.php?s=media&id=28759


위의 그림에서 보듯이

구석구석 너무 재미난다.(사실 등장부터 너무 재미난다)

(제일 처음 그림에서처럼 마리에티는 너무나 작아 나뭇잎 하나를 잡더라도 비교하면 자기 몸만큼 크다.)

 

우리가 쓰는 손목시계는 벽걸이 시계로,

작은 잉크병은 화병으로, 엄지손톱만한 캔 뚜껑은 훌륭한 조리기구 거치대로 유용하다. 

이렇듯 사람이 사용하던 물건을 하나씩 빌려(?)와 생활하는 모습을 그려낸다.

그 외에도 영화는 어마어마한 것들을 눈으로 보여준다. 


눈으로만 보여주냐?


소리,

아리에티가 느끼는 상대적인 소리를 우리가 느끼게 해준다. 

아리에티의 귀로 느끼는 큰 인간의 세상을 체험 혹은 상상할 수 있도록 소리로 자극 한다. 

인간의 목소리, 괘종시계의 괘의 왕복소리등 하찮게 흘려 버리는 미세한 자극들을 10cm소녀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느낄 수 있도록 배려를 아끼지 않는다. 


내용은 

영화를 봐야 알 수 있는 그것이기 때문에 자세하게 묘사하지 않겠지만,

커다란 스크린은 요리조리 눈을 잘 돌려 세밀하게 관찰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림 하나하나, 

장면 한 컷 한 컷 놓치기 아까운 것들이 너무나 많다. 

기억에 남는 장면도 많고 말이지. 

그래서인지 극장에서 소리내어 웃고, 탄성을 지르고, 때론 박수 소리도 들린다. 

그만큼 기발하고 묘사력이 뛰어나다. 


http://www.cine21.com/Movies/Mov_Movie/movie_detail.php?s=media&id=28759


지브리의 무기는 

수작업 배경에 있다. 

아날로그적인 배경과 인물 묘사를 통해서, 

에니메이션이 뭔가를 우리에게 늘 인식시켜 준다. 

아리에티 방에서처럼, 살아있는 붓터치, 농도가 느껴지는 물감의 놀림이 화면을 채워주니 감동은 배가 된다. 

(물론 픽사의 에니메이션도 수만장의 수작업 일러스트를 통해 만들어 지지만, 결국 디지털화 해서 결과물이 

 나오기 때문에 지브리 에니메이션과는 느낌이 사뭇 다르다.)


공장에서 찍어서 나오는 카드에 워드로 작성된 글자를 프린트 해서 받은 연하장과,

손수 종이를 골라 가위로 자르고 자필로 작성된 연하장의 차이랄까?

하야오도 모사 능력이 뛰어나고 지브리 스탭이야 말 할것 없이 잘 훈련된 일러스터니 결과물이야 뛰어날 수 밖에

없겠지만, 색체나 묘사력이 하야오 못지 않다. 


음악은,

천공의성 라퓨타, 모노노케 히메(월령공주), 바람계곡 나우시카등 히사이시 조가 음악을 맡았던 때의 

임팩트는 없었다. 어쩌면 그때와 지금의 지브리 에니메이션을 접하는 통로가 달라서 생기는 무제 일수도 있는데,

위에 언급한 3개의 작품 뿐만 아니라 하야오가 감독을 하고 히사이시 조가 음악을 맡았던 작품의 경우

우리나라에서 정식으로 극장에 개봉하기 전에 세간에는 음악이 먼저 알려지고,

어둠의 경로로 영상이 떠도는 식으로 지브리 에니메이션이 알려 졌다. 

그러니 음악이 낯설고 귀에 익지 않을수도 있다. 


영상 자체가 풀 오케스트라가 긴장감 있게 오르락 내리락 하며 연주할 만한 큰 액션의 장면은

기존의 지브리 에니메이션 보다는 적다. 선과악의 대결, 어떤 방식으로든 날아 다니는 장면, 지브리가 좋아하는

악의 무리들의 긴장감 조성등의 요소가 없지는 않지만 적고 스케일 자체가 아직은 부족하다. 




아리에티는 그간 지브리에서 보여 줬던, 여자 주인공의 모습과는 상당히 다르다. 

"너무 예쁘다."

"서구적이다."라는 느낌을 받았다. 

하야오의 인물이 동양적 이라면, 히로마사의 인물들은 약간은 서구적 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신체 비례에서 오는 이질감이 나에겐 느껴 졌나 보다. 

토토로의 메이, 마녀배달부 키키의 키키,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소피, 벼량위의 포뇨의 포뇨등 

지금 까지 지브리의 여자 주인공의 모습과 아리에티 모습과 비교하면 아리에티의 모습은 너무 단아하고 우아하기

까지 하고, 얼굴도 작아 흡사 길거리 다니다 연예기획사 직원에게 명함을 건내 받을 듯한 외모를 지니고 있다. 


감독이 추구하는 주인공의 외모야 다르겠지만,

10여년 이상 지브리 장편에 길들여져 있는 관객 입장에서는 사뭇 놀랐다. 


 


지브리가 공통적으로 우리에게 주기 위한 

환경파괴에 대한 경각심, 동심의 중요성, 가족愛의 교훈은 늘 있는 부분.


너무나 열심히 살아 가는 아리에티 가족,

하찮은 물건 하나하나 소중하게 다루고, 지켜 내며 삶을 이어 가는 노력과 간절함.

넘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는 소비, 가족을 지켜 내려는 구성원 간의 사랑.

그런 열심의 삶이 우리에겐 귀감이 되고, 교훈이 된다. 



그러나,

일본 사회에(언제 부터 비롯 되어 있는지 모르겠지만)깔려 있는 착한 엄마, 혹은 착한 여자의 이미지는 

좀 벗어 버리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디테일 하게 말 하지는 않겠지만, 항상 그부분이 아쉽다. 하울에서 아쉽게 느꼈던 그 부분.

원작이 하야오가 쓴 것이기에 어디 벗어 나겠냐 만은, 세상이 달라 지는데 너무 남자에게 기대는 여성상을

그려 주는건 아이들 한테도 나쁘지 않을까?


최선을 다해서 자기 삶을 지켜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꼭 누군가의 도움에 의해,

그것도 너무나 거대한 신 적인 존재의 도움으로 인한 사건 해결은 자꾸만 누군가를 원하게 된다. 




아리에티 같이 예쁘고, 씩씩하고, 고집있고, 든든한 딸아이가 있었으면 좋겠다.

는 생각을 갖게 하는,

예쁜 에니메이션.


지브리는 이제 한시름 놓겠네. 




한국 에니메이션도 잘 만들어져 성공하고 그랬으면 좋겠는데,

저변이 일본과는 완전 다르니, 실력이 있어도 발전 시킬수 없는 이 척박한 문화의 땅 한국.

아쉽다.